어린 광대와 아이돌- 요즘 아이돌을 바라보며 수주 변영로의 마음을 읽다.

박현숙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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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는 어린 광대  - 변영로

 

사내바지 입은 어린 계집애 광대

울긋불긋한 큰 부채 펼쳐들고

위태위태하게 줄의 이 끝으로 저 끝

갔다가는 오고 오고는 다시 가다

줄 한복판에 두 다리 늘이고 앉아

제 딴엔 고작 힘드는 것 한다는 듯

목쉰소리로 무엇인지 외오친다

아 가엾구나 애처로운 어린 광대 

이 괴론 세상 삶이 벌써 줄타긴데

재주답지 않은 것 재준 양하여

맘 무딘 사람들의 값싼 칭찬 받으려

줄 위에 섰느냐 아 가엾은 신세여!

(1929 . 1.8 조선일보)

 

부천에는 수주 문학상이 있다. 1999년에 시작되어 벌써 21회 째를 맞는다. 

수주 변영로의 문학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다. 수주(樹州) 란 부천의 옛 이름이다.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보내고 (號)도 수주라 하니 부천에서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호를 딴 문학상공모도 꾸준히 하고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로 시작하는 ‘논개’ 라는 시가 워낙에 유명하지만, 나는 우연히 접한 이 '줄 타는 어린광대' 라는 시가 개인적으로 인상이 남았다.

시는 1929년에 조선일보에서 발표됐다. 그때의 세상은 어땠을까? 개인적 궁금함이 생겼다.

[1929년 10월24일 검은 목요일은 미국이 붕괴될 뻔 했던 경제 최악의 대공황의시작이었다]

[1929년 조선박람회 때 전등을 달아 불을 밝힌 서울 남대문.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29년 조선박람회 포스터]

1929년을 검색해 보니  그 유명한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된 해 였고. 한국에선 그 해 조선박람회가 열렸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인도 시인 타고르가 3월에 조선일보에 [조선은 동방의 등촉] 을 발표했으며, 4월 22일 전차 전복사고로 여학생 7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얼마나 오래전부터 인재가 벌어졌던 건지) 1929년에 태어난 인물로는  김영삼 대통령의 영부인 손명순여사가 , 세계적인 배우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가 태어났다.(위키백과)

1920년에야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사내 바지 입은 어린 계집애 광대’로 시작되는 이 시의 첫 구절에 나는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느껴져서 그 시절의 어린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나 오락거리가 딱히 없던 그 시절의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는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시인이자 그 당시 사회운동가였던 변영로의 시선이 애틋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현재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있다.]

요즘 나는 프로듀스 워너원 엑스 라는 예능 프로를 즐겨 본다.

100명의 아이돌 지망생 중에서 국민투표를 통한 아이돌 11명을 뽑는다.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유흥거리 같지만, 살펴보면 그 안에 치열한 경쟁과 뼈를 깎는 아픔들이 있다.

중 3부터 아직 갖 20대 중반이 많은 나이라 여겨지는 소년들의 노래. 퍼포먼스 대결을 보자면 비록 바보상자를 통해서 바라보지만 서커스 천막 안에서 위태롭게 사내 바지 입은 어린 계집애를 바라보던 시인의 안타까움을 이해하게 된다.

외면하면 그만이지만, 그들은 무대 위에 올라서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어린계집애 광대의 위태위태한 줄타기와 다름이 없다.

‘이 괴론 세상 삶이 벌써 줄타긴데’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벌써 경험하는 어린 계집애 광대의 신세가 애처롭게 느껴지나 보다. 나도 시를 읽다가 울컥했다.

세상을 살아보니. 내 인생이 줄타기라는 시적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술을 좋아하는 괴짜 시인이지만. 수주 변영로는 남들은 웃으며 바라보는 어린 광대를 보고 인생을 생각하고 슬픔을 느꼈다. 나역시 요새 화려한 칼군무와 외모에 가려진 아이돌의 노력이 그저 웃으면서만 바라보지 않게 되는 이유다. 시대와 환경과 인생이 제 각각인데 어린 광대들의 외줄 타기는 형태가 변했을 뿐 여전한 거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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